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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TV

나는 흙이 되었다.


나는 흙이 되었다.


                                                                         노아 김태우


까칠한 나의 심장을 헤집으며 작은 씨앗이 내 속으로 들어왔다.

무심코 스쳐지나 갈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은 어느새 나의 심장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나의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러다 말겠지 생각하며 나는 여전히 나의 삶 속에 자신을 묻는다.

 

세상에서 울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난 나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 버렸다.

두근거림의 긴장도 느낄 시간이 없다.

그런 와중에도 가끔은 나의 가슴이 아프다.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았는데도 눈물이 난다.

자그마한 일에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분노한다.

 

세상에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미련을 갖지 말며,

나에게 없는 것에 대하여 애통해 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나에겐 언제나 소망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가시덤불의 덫을 놓는다.

, 나라는 사람의 모습이 이런 것인가?

 

도시의 소음과 탁한 공기를 벗어 버리고

발길이 닿는 곳까지 고요함을 찾아 길을 떠나자.

나에게 언제 그런 여유가 있었느냐고 되묻기 전에 그냥 길을 나선다.

잠시 동안이라도 나에게 쉼이 있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먼 길을 돌아 왔다고 생각할 즈음 문득, 거울 속에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언젠가 만났을 것 같은 낯익은 영감이다.

나에게 기쁨의 끈이 되었고 또 눈물이 되었던 그 그림자가 그 곳에 비치고 있다.

내가 살아왔던 이 길을 그 누군가도 걸어왔단 말인가?

 

얼키설키 엉켜진 이 고리들을 누가 풀어 줄 수 있을까?

굳어 가는 심장 속에 혈관을 가로 지르며 뜨겁게 흐르는 피의 흐름이 보이는지 않는가?

다시 심장이 아파온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피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나에게서 흐른다.

나 스스로 나의 생명을 지켜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아무런 느낌도 없이 살아왔는데

내 안에 다른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흙이다.

지금은 살았다는 이름으로 세상의 소음도 어두움과 빛도 구분하고 있지만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흙에서 너의 씨를 받으면 내 가슴에 묻고 그 생명에 물을 공급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넌 이미 내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생명은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명은 흙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새가 씨를 먹어 그 속으로 삼겨도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생명은 생명일 뿐 아무도 그것을 막을 재간이 없다.

이제 난 발걸음을 돌린다. 이제 여행조차도 나에게 쉼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발길을 돌린다.

 

광활한 광야에 알몸으로 누워 하늘을 보자.

그리고 뜨거운 태양이 나를 삼키울 듯이 내 살을 타고 들어와도 뜨겁지가 않다.

내 속에 자라던 씨가 나의 귀를 열고 눈을 열어 주었다.

내 속에 모든 돌짝 밭을 뚫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내가 죽어 한 줌의 흙이 되려고 하였건만, 난 이미 흙이 되어 있었다.

내가 물을 머금고 씨에 생명을 주려 하였건만 이미 그 씨는 내 속에서 열매를 맺고 있었다.

이제 세상의 그 어떤 소란한 소리에 놀라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그 무엇에도 내 눈은 슬픔에 젖지 않는다.

 

나는 이제 쉬고 있다.

내 안에 생명이 열매를 맺고 있음을 아는 순간 나에게는 평화가 찾아온다.

하늘의 소리가 들린다. 청아한 음악도 아니요, 천사들의 음성도 아닌 무음의 소리가 들린다.

거울 속에 비친 누군가의 삶이 이제는 아름다움으로 세상 속으로 흩어져 간다.